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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자립

[공연 리뷰] 연극 《오이디푸스》를 보고 —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배운 인간의 존엄과 나이 듦의 태도

by 웰에이징탐구소장 2026.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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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세종문화회관에서 관람한 연극 《오이디푸스》 후기입니다. 피할 수 없는 신탁 앞에서도 존엄을 지킨 오이디푸스와 90분을 완벽히 장악한 60대 중반 최수종 배우의 열정을 통해, 나이 듦을 핑계 삼지 않고 인문학적 통찰과 주체적인 태도로 일상을 가꾸는 노후 자립의 가치를 짚어봅니다.

 

연극 '오이디푸수'의 마지막 장면

 

 

 

오랜만에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대학 동기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를 찾았습니다. 평소 고전 작품이 지닌 묵직한 힘과 질문을 좋아하기에,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포클레스의 대표작 《오이디푸스》 무대를 마주하는 시간은 관람 전부터 남다른 설렘을 주었습니다.

 

익숙함과 아쉬움, 그리고 90분의 몰입

이번 공연은 최수종, 서영희, 박정자 등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베테랑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오랜 세월 브라운관과 무대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목소리와 연기는 극의 흐름을 편안하고 안정감 있게 이끌어주었습니다. 다만, 드라마를 통해 워낙 친숙해진 배우들의 톤이 고전 비극 특유의 낯설고 원초적인 긴장감을 다소 상쇄시키는 면도 있었습니다. 무대 연출 또한 상징적인 미장센보다는 영상 매체에 의존한 부분이 많아 고전 연극 특유의 아날로그적 질감을 기대했던 관객으로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결말을 훤히 알고 있는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90분의 러닝타임 내내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극의 밀도와 몰입감은 대단했습니다. 그 몰입은 작품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의 무게뿐 아니라, 무대를 장악한 배우의 뜨거운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부조리한 신탁과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

흔히 우리는 오이디푸스를 프로이트 심리학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틀로 먼저 기억하곤 합니다. 그러나 원작 비극으로 마주한 오이디푸스는 어머니를 향한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가혹한 신탁을 피하고자 자신의 삶 전체를 걸고 발버둥 쳤던 비극적 영웅이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저주받은 운명을 부여받고, 그 비극을 피하고자 양부모의 곁을 떠나 떠돌았음에도 결국 그 운명의 덫에 걸려들고 마는 과정은 보는 내내 깊은 연민과 함께 부조리함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버지의 죄로 인한 저주를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자식이 온몸으로 짊어져야 하는가?" "피하려 애쓸수록 파멸로 다가가는 것이 운명이라면, 인간의 모든 노력은 무의미한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무력감이 가슴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 특히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시작과 끝의 불가항력성을 더욱 깊이 체감하게 됩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듯, 죽음 또한 온전히 나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은 때로 짙은 우울감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소포클레스가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 운명에 맞서는 태도의 존엄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 비극은 왜 수천 년 동안 이토록 가혹하고 처절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을까요? 단순히 "운명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니 순응하라"는 패배주의를 전하기 위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극의 진정한 정점은 오이디푸스가 모든 진실을 깨달은 순간에 있습니다. 그는 가혹한 운명과 신을 탓하며 도망치거나 진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두 눈을 멀게 함으로써 자신의 비극을 직시하고, 그 모든 무게와 책임을 자신의 온몸으로 짊어진 채 광야로 걸어 나갑니다. 운명의 설계는 신의 몫이었을지언정, 그 운명에 어떤 태도로 응답하고 책임을 질 것인가는 오이디푸스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소포클레스가 보여준 것은 '운명의 위대함'이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서도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롯이 짊어지는 ‘인간 정신의 숭고한 자립과 존엄’입니다.

 

60대 중반 배우의 열정 앞에서 마주한 부끄러움

이번 공연에서 또 하나 깊은 울림을 준 것은 타이틀롤을 맡은 최수종 배우의 무대였습니다. 6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90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한 번도 무대 밖으로 퇴장하지 않은 채, 거의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방대한 양의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빈틈없는 열정과 집중력을 보며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깜빡하는 기억력과 쇠퇴하는 암기력을 마주할 때마다, 그저 '나이가 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며 당연하게 치부하고 지적 훈련과 노력을 게을리했던 내 안의 안일한 태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신체적 한계를 핑계 삼기보다 끊임없이 갈고닦으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주체적인 삶의 훌륭한 본보기였습니다.

 

노후의 길목에서: 깊은 통찰과 배움을 이어가는 삶

연극장을 나서며 인생 후반전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됩니다. 세월이 흐르며 찾아오는 신체적 쇠약,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 그리고 언젠가 마주해야 할 죽음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일종의 '주어진 조건'입니다.

하지만 시작과 끝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해서 그 사이를 채우는 삶의 과정까지 무력한 것은 아닙니다.

  •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 이미 주어진 과거, 생로병사의 자연법칙,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죽음
  • 우리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 내 일상을 가꾸는 규칙적인 습관, 그리고 나에게 닥쳐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마주하는 주체적인 마음가짐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얕은 자극보다 인간과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인문학 독서와 고전을 다룬 문화 예술 활동을 꾸준히 늘려가며 내면을 단단히 채우는 시간이 절실함을 느낍니다.

다음에는 오랜 세월 무대를 지켜온 대배우 신구, 박근형 주연의 연극 《베니스의 상인》도 찾아볼 계획입니다. 고인이 되신 이순재 배우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못 본 것이 두고 두고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노화와 죽음 앞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스스로의 일상과 정신을 책임지며 주도적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전과 예술이 오늘날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지혜로운 자립의 태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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